[MS투데이] SK하이닉스가 신입 수시채용에서 학력 제한을 없애면서, 삼성의 ‘열린 채용’으로 대표되는 능력 중심 채용 흐름이 반도체 업계 인재 전략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시대 인재 확보를 위해 신입사원 채용 기준에서 학력 자격 요건을 전면 삭제했다. 회사는 지난 17일 시작한 신입 수시채용부터 기존 공고에 명시하던 ‘4년제 학사 학위 이상 지원 가능’ 등 문구를 없애고, 지원자의 경험과 직무 역량, 성장 가능성, 기업문화 적합성을 중심으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채용의 서류 접수는 23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채용 문구 변경을 넘어 반도체 산업의 인재 선발 방식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연구개발, 설계, 공정 등 핵심 직무에서 학위가 기본적인 진입 조건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AI 반도체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들은 정형화된 학력보다 실제 문제 해결 능력과 기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더 중요한 평가 요소로 보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 ‘학위’ 대신 ‘성장 가능성’
SK하이닉스는 이번 수시채용에서 설계, 소자, 연구개발 공정, 제품 엔지니어링, IT 등 주요 직무를 대상으로 세 자릿수 규모의 인원을 선발할 계획이다. 수시채용에서 이처럼 큰 규모의 채용을 진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회사는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우수한 잠재력을 가진 신입 인재를 조기에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해 온 AI 시대 인재상도 이번 개편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최 회장은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역량으로 본질을 파고드는 ‘생각 근육’,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적응 근육’, 다양성을 이해하고 협업하는 ‘공감 근육’을 제시해 왔다. SK하이닉스의 학력 제한 폐지는 이 같은 인재상을 채용 제도에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학력 제한 폐지가 곧 채용 기준 완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류상 자격 요건을 줄이는 대신 직무 경험, 프로젝트 수행 능력, 기술 이해도, 면접 검증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 있다. 고졸이나 전문대졸 지원자에게 기회가 넓어지는 동시에, 대졸 지원자 역시 학위만으로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구조다.
◆삼성 ‘열린 채용’ 재조명
삼성의 채용 제도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성은 1995년 공채 전형에서 학력, 국적, 성별, 나이, 연고 등 자격 제한을 없애는 ‘열린 채용’을 도입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도였지만, 이후 삼성의 대표적인 인사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관계사에서는 고졸·전문대 출신 인력이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IT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 부문에서 근무해 왔다.
특히 삼성은 국내 4대 그룹 가운데 정기 공채 전통을 유지하는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학력 제한을 두지 않는 대신 삼성직무적성검사(GSAT), 면접, 직무 검증 등을 통해 지원자의 기본 역량과 조직 적합성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SK하이닉스의 이번 결정이 삼성의 선행 사례와 맞물리면서, 재계 전반에서 실력 중심 채용이 확산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변화가 반도체 인력난과도 맞닿아 있다고 본다. AI 서버, 고대역폭메모리(HBM), 차세대 메모리 수요가 빠르게 커지면서 기업들은 기존 학위 중심 채용만으로 필요한 인재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실무형 인재, 비전통적 경로의 기술 인재, 현장 경험을 갖춘 지원자를 폭넓게 발굴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결국 SK하이닉스의 학력 제한 폐지는 채용 문턱을 낮추는 조치라기보다 인재를 판단하는 기준을 바꾸는 실험에 가깝다. AI 반도체 경쟁이 기술력뿐 아니라 인재 확보전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학위보다 역량을 앞세운 채용 방식은 국내 대기업 채용 문화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